
헤르만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은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다.
연초 가족여행으로 제천 리솜포레스트에 갔다가 카페 한쪽에 진열된 헤르만헤세 책을 펼쳐 들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반 남짓. 가볍게 읽으려 했지만 문장에 이끌려 끝내 몰입하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바로 알라딘 서점에 들러 구매했고, 그렇게 나의 삶을 견디는 기쁨 후기가 시작되었다.
제천 여행에서 만난 헤르만헤세 작품
책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단정하고 고요한 분위기. 그리고 익숙한 이름, 헤르만 헤세. 사실 내가 알고 있던 헤르만헤세 작품은 데미안이 전부였다.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 꽤 강렬했고, 너무 좋아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권하고 함께 대화까지 나눴던 기억이 있다.
그 경험 덕분에 헤르만헤세 책에 대한 신뢰가 자연스럽게 쌓여 있었다.
이번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 형식이다.
뚜렷한 사건 중심의 줄거리가 있다기보다는, 전쟁과 인간 존재, 예술과 자유에 대한 사유가 조용히 이어진다.
삶을 견디는 기쁨 줄거리라고 정의하기보다는, 삶을 통과한 한 작가의 고백에 가깝다.
삶을 견디는 기쁨 리뷰, 견딤의 의미
‘삶을 견디는’이라는 표현은 처음엔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행복을 크게 외치기보다,
고통과 공존하는 태도를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불면에 대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잠들지 못하는 밤도 의미가 있으며, 그 시간은 오히려 영혼이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라는 통찰.
나는 늘 문제를 해결하려 애써왔고, 감정을 분석하고 정리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이 문장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헤르만헤세 그림, 관심 없던 내가 멈춰 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림에 큰 관심이 없었다.
전시회를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도 아니었고, 미술은 늘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이들은 달랐다. 특히 큰딸은 안양예고 미술과를 거쳐 단국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딸의 진로를 따라 전시회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엔 엄마라서 갔던 자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는 딸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붓 자국을 따라가 보고, 색이 겹쳐진 부분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냥 머무는 시간이 생겼다.
이 책을 통해 헤르만헤세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가 이렇게 섬세한 수채화를 남긴 작가라는 사실을 그동안 몰랐다는 것.
언어는 오해받을 수 있지만 그림은 그렇지 않다는 그의 생각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예전의 나는 그림을 몰라서 외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느끼는 시간을 스스로 줄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딸 덕분에 전시회를 찾게 되었고, 이 책 덕분에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삶을 견디는 기쁨 후기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바뀐 건 삶을 대하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고통을 해결하려 하기 전에 잠시 바라보는 것.
감정을 분석하기 전에 그대로 두는 것. 견딤은 무력함이 아니라, 머무는 힘이라는 걸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전시회 일정이 눈에 들어오고, 딸과 나란히 서서 한 작품을 오래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여행지 카페에서 우연히 펼친 한 권의 책이 나의 시선까지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헤르만 헤세 삶을 견디는 기쁨은 화려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말한다.
견디는 시간에도 의미가 있다고.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천천히 펼쳐볼 만한 책이다.